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크 콜먼 (문단 편집) == 기타 == 아마추어 자유형 레슬링 선수로 세계선수권 준우승, 바르셀로나 올림픽 7위에 입상한 기록이 있다. [[커트 앵글]]과 시합해서 이긴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대체적으로 커트 앵글이 압도적이긴했다. 명문 MMA 체육관인 팀 해머하우스의 수장으로 [[케빈 랜들맨]], [[필 바로니]] 등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그의 몰락과 함께 해머하우스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콜먼의 UFC 복귀는 생계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1세대 파이터인 커투어가 영악하리만큼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대목. 2011년에는 PRIDE GP 우승 당시 착용했던 글러브를 경매에 부쳤다. [[파일:attachment/마크 콜먼/ff.jpg]]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 [[바나나]]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마크 커]]의 대학교 레슬링부 선배로 커를 MMA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양 선수의 PRIDE 진출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고 콜먼이 커의 세컨을 봐준 적도 있다. 커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스매싱 머신'에서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콜먼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현역 시절 약물을 복용했음을 자백했다.''' 술집기도, 경호원등의 일을 하다 그의 레슬링 경력을 눈여겨본 ufc의 에이전트에 스카웃되어 mma에 발을 들이게 된다. PRIDE 2000 GP에서 우승했을 때 기뻐 날뛰다가 링사이드에서 넘어지기도 했다. [[파일:external/pds20.egloos.com/e0066657_4cd5682351a3e.gif]] 효도르와의 2차전에서 완패한 후 효도르에게 딸 앞에서 체면 차리게 해달라는 농담과 함께(옆에 서 있는 소녀가 바로 그의 딸이다) '''얼굴을 1대만 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효도르가 웃으며 허락하자 턱을 가볍게 '''2대 때렸다'''. [[파일:external/pds19.egloos.com/e0066657_4c6ba4701a034.gif]] 어쨌든 2번이나 완패한 후에는 효빠가 되어 버렸다. 당시 에밀리아넨코 형제는 러시안 탑 팀에서 대전료를 갈취당하며 고생하고 있었는데 콜먼이 "효도르는 실력에 비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발언을 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후 효도르는 RTT를 떠나 레드 데빌로 이적하여 M-1의 핵심인물 중 한명으로 부상한다. 반대로 당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던 콜먼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 U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영화배우 [[마동석]]이 그의 개인 웨이트 트레이너로 일한 적이 있었다. 마동석과 사석에서 "년간 5딸라라는 거금을 줄테니 트레이너 말고 선수나 해라" 하고 농담하던 사이였다. 선수 은퇴이후 양쪽 고관절이 모두 엉망이 되어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으나 몆년뒤 감염과 부작용으로 관절이 빠지는 상황을 겪어 재수술을 해야했는데 이때 너무나 많은 수술비를 감당할수가 없어서 자신의 트로피와 글러브까지 경매로 내놓고 크라우드 펀딩까지 해야 했다고 한다. 양쪽 고관절이 이렇게 된건 오랜 선수생활과 오버 트레이닝도 있지만 도핑 약물 부작용의 영향도 있었을것으로 보인다. 2021년 근황으로 팀 해머하우스는 힘든 시기도 많았지만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현재 원년 멤버로는 웨스 심스, [[브랜든 리 힝클]]만 남아서 수석 코치로 일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